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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

** 채근담 / 조지훈 / 나남

by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 2019. 11. 15.

채근담 : 왕신민은 "사람이 항상 채근을 씹어 먹을 수 있으면 곧 백사를 가히 이루리라." 고 하였으나,

사람이 일상 초근목피와 같은 조식을 달게 여겨 그 담담한 맛에서 참맛을 느끼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1. 대숲은 얇은 바람결에도 소리를 내지만 바람이 가고 나면 고요해진다.

못물은 무엇이든지 떠오르면 비치지만 가고 나면 아무런 자체가 없다.

 

군자의 마음도 대숲과 못물과 같으니 사물이 오면 응접 하되 간 뒤에는 거리낌이 없다.

연연이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어지러운 세상에 자재함을 얻을 것이다.


2. 통달한 사람은 싫어함이 없다.

집착함이 있어야 싫어함이 있으니 명리에 관심이 없으면 또 무슨 명리를 싫어하는 마음이 따로 있으리.

 

4. 길고 짧고 넓고 좁은 것과 높고 낮음이 다 사람의 착안과 甬意에 있다.

세월이 언제 끝난 적이 있어 짧다 하는가. 낭비하지 않으면 항상 넉넉하다.

천지가 사람을 가둔 적 없건 만은 마음 좁은 사람이 좁다 하나니,

육 척도 못 되는 몸하나 담을 자리야 가는 곳마다 있지 아니한가.

풍화 설월보다 더 유한한 것이 없거늘,
부질없아 바쁜 사람이 조용히 뗘 보지도 않고 덧없다 하는구나,


6. 인생이 꿈같은데 꿈속에 꿈이 있다.

깊은 밤 종소리를 듣거든 그 꿈을 깨워 마음의 창을 열라.

덧없는 이 몸안에 우주의 본체가 있다.

맑은 못에 잠긴 달빛을 보거든 그 우주의 모습을 였보라.

깨달아야 꿈인 줄 알 것이요 보아야 참인 줄 알 것이다..

 

7. 천지의 대도와 우주의 진리란 언어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석가도 49년 설법에 한자도 說함이 없다고 하였다.


문자로 풀이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족한 일인가.

천지만물이 곧 그대로 우주의 실상이니 진리는 오직 스스로 체득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다.

 

18. 물은 흐르지 않으면 썩고 돌은 구르는 동안은 이끼가 앉지 않는다.

움직임만 좋아하면 깊은 맛이 없고, 고적만 좋아하면 생기가 없다는 말이다.


27. 속인은 봄을 즐기지만 철인은 가을을 즐긴다고 한다.

봄날의 경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녹작지근하게 하고 安閑하게 하며

또 한 유혹하고 번뇌하게 하나 이 모두 다 건곤 한때의 환경이요.

가을의 묘미는 사람의 정신뿐 아니라 뼛속까지 맑게 하고 갈앉게 하며

또 환원의 이치를 가르치고 깨달음의 기틀을 주나니

천지의 참모습은 가을에 느낀다고 하겠다.

 

33. 고요하고 조용한 마음 바탕을 가진 사람이라야

천지의 참뜻과 자연의 참맛을 안다는 말이다.

거문고나 피리만이 음악이 아니듯이 붓과 먹으로

종이에 쓴 것만을 글이라고 생각함은 큰 잘못이다.

자연의 음악을 들을 줄 아는 마음의 귀와 건곤의 문장을

읽을 줄 아는 마음의 눈을 기르라.

이 이목이 없이는 생의 참뜻과 멋을 모른다.

 

51. 사람은 작은 우주라 한다.

우주의 한 분신이면서 사람은 그 우주의 모던 작용을 줄여서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천지간의 만상의 변화는 그대로 사람의 심신에

조응하여 자연과 인간은 구별이 없어진다.

맑고 밝은 것을 보면 마음도 맑아지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만나면 뜻이 또한 부드러워진다.

천지에 풍우 상설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는 희로애락이 있지 않은가.


10. 고요한 속에서 몸과 마음이 고요하기는 쉬운 일이니

이것은 참 고요함이 아니다.

움직이고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함을 맛볼 줄 알아야

이것이 천성의 眞境이니 참 고요함이다.

大隱은 市巷에 숨는다는 옛말이 있다.

깊은 산골에 숨어 살기는 어렵지 않지만

시끄러운 저자에 숨아 살기는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절간에 앉아서 도를 닦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지러운 거리에 나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시끄럽고 어려운 고비에 앉혀 놓아 보지 않고는

과연 그 사람이 참 고요함을 체득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모른다.

즐거운 자리에 즐거워하는 것이야 누가 못하겠는가.

이것이 참 즐거움이 아니다.

괴롭고 아픈 속에서 얻은 즐거움이 마음의 참 妙容을 아는 까닭이다.

이것이 참 즐거움이다.

苦爲樂이란 말이 있다. 괴로움이 따로 있고 즐거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생각 문득 돌리면 괴로움이 그대로 즐거움이 된다는 말이다.

 

12. 천지는 비롯도 끝남도 없으니 항상 있는 것이지만

사람의 목숨이야 어디 그런가.

한번 가면 그뿐인 이 인생은 길어야 백 년인데

그 백년 가기가 눈 깜짝할 사이니 어쩐단 말인가.

그러나 총총한 세월 속에서 나마 우리가 나서 살고 있으니 즐거운 일이요.

그 짧은 삶을 헛되이 보낼까 근심하지 않을 수 없음은

우리의 생이 짧으면 짧을수록 무슨 보람이라도 남겨야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있고

짧은 삶을 더 허무하게 하지 않을 방도가 되기 때문이다.

 

1. 선의 究竟은 梧道에 있다. 오도는 견성이요. 견성이 곧 해탈이다.

견성은 곧 성을 본다는 것이니 성은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 "라는 불성이라는

'性이니 만물에 통하는 바탕이다.

다시 말하면 성은 천성이자 인성이다.

심성이자 불성이다. 이"성"을 보는 것이다.

이 성의 본질을 파 득하는 것을 견성 또는 대오라고 한다.

견성하고자 하면 먼저 마음을 텅 비워야 한다.

선악. 시비. 애증. 취사 등 일체의 차별과 상대의 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러한 상대의 망념을 모조리 제거하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성이 나타난다.

만일 마음은 그 차별이 복닥거리는 소에 바삐 헤매면서 건성을 구한다면

이는 마치 물결을 헤치면서 달그림자를 봄과 같다.

뜻이 맑아서 번뇌의 티끌에 더럽혀지지 않으면

마음도 절로 맑아질 것이니

만일 뜻을 밝히지 않고 마음을 밝히려 한다면

이는 먼지를 일으키면서 거울의 밝음음을 바라는 것과 같다.

마음은 性의 작용이요 뜻은 마음의 한 작용이다.

성을 보려면 마음을 비워야 하고

마음을 비우자면 뜻을 맑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본디 따로 나눠진 것이 아니니

새삼스레 차례가 있을 까닭이 없다.

52. 아무것도 탓하지 마라. 허물은 항상 자신에게 있다.

마음에 번거로움 없어하고 싶고 하기 싫은 두 마음이 같고 트지 않으면

무엇이 능히 너를 속이며 어긋나게 할 것인가.

영욕의 득실과 시비의 이해 가다 너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나니

시끄러운 마음을 붙들어 고요히 앉게 하라.

 

1. 불교에 진공과 묘유라는 말이 있다.

진공은 과학에서 말하는 진공과는 뜻이 다르니 없는 것 같으면서

실상 그 속에 있음을 가진 것을 말한다.

이치를 반야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하였다.

색은 형태를 가지고 나타난 현상이니 바뀌 말하면 일체만물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모던 것이 인연으로 화합되어 잠시 뭉쳤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색즉시공이라 한다.

그러나 비록 실체가 없이 인연으로 뭉쳐 저서 나타났다 할지라도

현재 눈앞에 나타나 있는 이상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공즉시색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것,

이것을 진공이라 하나니,

진공은 공이 아니라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따라서 형상에 집착하여 이것이 실체다라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모던 형상이 실체가 없다 해서

일체를 공무라고 생각하는 것도 진리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제상이 비상임을 봐도 틀리고

제상을 실상이라고 해도 맞지 않는단 말이다.

석가세존은 어떻게 말씀하셨던가.

세간에 있어서 세간을 떠나 있거나 인욕을 따르는 것도 고통이요.

인욕을 끊는 것도 고통이라 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유무가 둘 아님을 깨 딸 아야 할 것이다.

 

1. 오늘날 사람들은 오로지 무념무상을 체득하려고 노력하나

일어나는 생각을 마침내 없애지는 못한다.

이것은 무리도 아닌 당연지사이니 사람이란 원래 목석이 아니거늘

목석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이다.

무상무념은 목석처럼 되어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요.

다만 생각이 일어날지라도 그 생각을 머물러 두지 말고 그대로 흘러 버리고

뒤에서 오는 생각에도 얽매이지 않아 전념과 후면 모두 다 등한히 하여

현재의 인연만 따르면 자연히 무념무상의 경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1. 분이 아닌 복과 까닭 없는 수확을 받아서 누리지 말라.

이는 조물주의 낚시 미끼가 아니면 반듯이 인간 세상의 함정이기 때문이다.

 

맛이 있는 미끼. 힘 안 드는 거둠은 재앙과 실패의 바탕이니

이를 당하여 높이 착안하지 않으면 그 술수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43. 물욕과 사념이 없는 것은 공허라 하고 진리가 가득 찬 것을 충실이라 하였다.

마음을 공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물욕과 사념을 털어 버리라는 말이니

그래야만 그 자리에 진리가 들어와 앉는 것이다.

마음은 가득 차야 한다는 것은 정의와 진리로서 체우란 말이니

그래야만 거기에 욕념이 들어앉을자리가 없는 것이다.

 

71. 하늘이 큰 일을 맡길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몸을 수고롭게 하고

배를 굶 주리 한다는 말이 있다.

또 사람은 어지러움을 겪지 않으면 지혜가 밝아지지 않는다든가,

영운이 곤궁한 속에서 나온다는 말은 그 근본 된 뜻이 같은 것이다.

재난과 역경이 사람을 단련하여 대성시킨다는 말이다.

만일 이러한 단련을 받지 못하면 몸이 어려움을 감 담하지 못할 것이다.

마음과 지모 사려가 대임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는 공 궁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또한 남의 앞에 짐짓 늘어놓지 않는다.

 

76. 지식이 깊어야 수양이 높아지며 수양이 높아야 인격이 은은한 향기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식견을 넓힘으로써 도량이 커지고 도량이 커짐에 따라 덕이 높아 간다.

지식으로써 교양이 높아지지만 많이 아는 것만으로 교양은 서지를 않는다.

그 지식이 하나의 체계를 가지고 자기를 일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교양이라 할 수 있다.

도량이 또한 그러하다.

 

84. 무슨 일이든지 뜻대로 되지 않고 곤경에 빠지게 되거든

아직도 나만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원망하고 허물하는 마음이 절로 사라질 것이다.

마음이 게을러 질려거든 곧 이 세상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많음을

생각하면 자연이 정신이 분발하게 될 것이다.

 

97. 뜻대로 안 된다고 걱정마라 정성만 다하면 언제든지 반드시 성공할 날이 있을 것이다.

마음이 쾌하다고 기뻐하지 마라. 그 마음이 실패의 싹이니 즐거움이야 몇 날을 갈 것이랴.

오랬랬동안 무사하다고 너무 믿지 마라.

언제 이변이 생겨 당황할 때가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지 않은가.

일을 시작함에 있어 처음 부닥치는 난관에 겁을 먹고 주저앉지 마라.

그 난관만 돌파하면 뒤는 의외로 쉬워지는 법이다.

 

98. 세상 사람은 마음이 맞는 것. 즉 욕정이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써

즐거움을 삼끼 때문에 즐거움을 잡으려고 마음이 도리어 괴로운 곳에 매여 있지만,

통달한 선비는 마음과 어긋나는 것.

즉 욕정이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써 낙을 삼기 때문에

마침내 괴로운 마음이 즐거움을 바꾸어 온다.

행복을? 오면? 는 마음이 괴롭고

고심을 벗하면 그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말이다.

 

30. 독서를 잘하는 사람은 기쁨이 극하여 절로 춤추어지는 경지에 이른다.

바로 글 지은 사람의 정신에 들어갈 것이요.

문자에 사로잡혀 그것의 穿鑿에만 고심하지 않는다.

사물을 잘 보는 자는 마음이 융화하고 정신이 흡족한 경지에 이르는 사람이다.

사람의 진수를 얻어 그것과 완전히 동화되지 않으면

외부의 형태에만 捕泥 되고 말기 때문이다.

 

36. 마음의 무거운 짐을 푸는 것이 해탈이다.

해탈하는 때와 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생각났을 때

그때 곧 모든 번뇌를 놓아 버려라.

만일 따로 그 짐 풀 자리를 찾으면 만년가도 목적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승려나 도사가 되면 좋으리라 생각할지 모르나

그런 희미한 생각으로써 자기의 심성을 할 수가 없다.

지금 곧 휴식하면 휴식할 수 있지만

휴식될 때를 기다리면 휴식은 영원히 할 수 없으리라는 말이 옳다.

 

38. 눈앞에 닥쳐오는 모든 일을 족한 줄 아는 자는 그 자리가 곧 그대로 선경이요.

족한 줄을 모르는 자에게는 영원히 속 경이된다.

마음이 넉넉하니 모자람이 없고 모자람이 없으니

욕망과 집착이 없을 것.

이 어찌 선경이 아니랴.

세간을 초출함에는 목전의 일을 잘 쓰는 데 있으니

잘 쓰면 사물을 이롭게 하는 생기가 되지만 잘못 쓰면 사람과 사물을 손상케 하는 살기가 된다.